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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5일 폭도의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는 삼미대우 페샤와르 터미널의 버스들. |
지난 2월 15일 파키스탄의 서부 도시 페샤와르에서 폭동이 발생, 한국업체 삼미대우고속버스의 터미널에 서 있던 버스 16대와 터미널 건물이 불에 타고 약탈당했다. 당시 인도 뉴델리에 있었던 기자는 국제전화로 이제병 삼미대우고속버스 사장과 통화했다. 당초 이슬람 예언자 마호메트를 모독한 덴마크 언론의 만평에 항의하던 시위대는 삼미대우 등 외국업체를 공격했고, 이 사장은 “경쟁업체가 사주했다”면서 대단히 흥분해 있었다.
삼미대우는 파키스탄에서 최대의 고속버스업체로, 경쟁상대가 없을 정도로 파키스탄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불행한 사고를 당하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또 다른 한국업체가 우리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외국 땅에서 이토록 열심히 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비자를 발급 받는 데도 시일이 오래 걸려서 당장에 가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40여일이 지나면서 삼미대우의 뒷얘기가 궁금했고 이 사장과 다시 통화를 시도했다. 파키스탄의 대도시 라호르 본사에 있던 이 사장은 폭동 이후의 복구 과정에 대해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며 또 다시 흥분했다. 자신은 총리실로부터 총리 면담이 곧 이뤄질 예정이니 ‘라호르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기자는 비행기를 타고 파키스탄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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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운행을 준비 중인 여승무원. |
삼미대우는 2004년 삼미건설이 대우로부터 인수한 파키스탄 최대의 고속버스업체. 버스 139대에 직원 수만 2900명. 연 500만명을 수송한다고 했다. 이 사장은 “삼성애니콜은 몰라도, 파키스탄에서 삼미대우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말했다. 대우로부터 인수할 당시 76대였던 고속버스는 139대로 늘었고, 운행 도시는 13개에서 35개로 늘어났다. 라호르에서는 시내버스 70대도 운행 중이다. 삼미 사장과 국제화재해상보험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2001년 1월 파키스탄에 건너온 이 사장은 “신규 고속버스 노선을 개설할 때마다 해당 노선의 항공기 승객이 줄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과 이광호 부장(운행 정비담당), 이영희 차장(관리담당) 등 한국인은 3명뿐이다.
삼미대우는 파키스탄의 교통문화에 혁명을 가져왔다. 이광호 부장은 ‘정시 출발’이 신조라고 말했다. 1시간 늦으면 요금의 50%를 환불하고, 2시간 늦으면 요금의 100%를 환불했다. 다른 업체의 경우 손님이 어느 정도 타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고 두 시간 정도 연착은 다반사인 게 파키스탄의 실정. 삼미대우는 심지어 차량 에어컨이 안 들어와도 요금 전액을 돌려줬다.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에어컨 서비스가 중요한 걸 감안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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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된 페샤와르 터미널. |
삼미대우의 본사가 있는 라호르에서, 사고 현장인 페샤와르까지는 버스로 7시간30분 거리였다. 라호르는 인도에 접한 펀자브주의 수도로 파키스탄 제2의 도시다. 삼미대우의 라호르 버스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타니 고속버스 안내양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에 사라진 추억의 안내양이었다. 더구나 이슬람 국가에서 고속버스 안내양이라니, 얼핏 납득이 안 됐다. 여성을 서비스 직종에 내세우지 않는 게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문화다. 인도의 경우에는 골프장 캐디도 모두 남자다.
안내양, 이곳에서는 영어로 ‘호스티스(hostess)’라고 했다. 20대 초반의 그녀는 진한 푸른색 유니폼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안내양 제도는 대우 시절에 도입됐다고 했다. 지금도 350명의 안내양이 있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안내양에 대해서는 별도차량을 이용해 출퇴근시켜주고 있다. 버스가 출발하니 마이크를 잡고 이날의 운행에 대해 안내를 했다. 모든 게 옛날 한국의 안내양이 했던 것과 같았다.
서비스는 비행기 수준. 자리에 앉자마자 호스티스가 도시락을 나눠줬고 음료수를 계속 제공했다. 심지어는 승객전용 잡지도 나왔다. 동행한 이 부장은 “버스 요금이 다른 업체에 비해 갑절인데도 승객이 꽉꽉 찬다”고 자랑했다.
고속버스는 페샤와르를 향해 출발, 라호르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라호르에서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의 6차선 고속도로 375㎞는 대우건설이 7년 전 건설한 것으로 지금도 보수할 게 거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삼미가 대우버스를 인수하고도 ‘대우’란 브랜드를 계속 사용하고 ‘삼미’란 글씨보다 ‘대우’를 눈에 띄게 하는 건 파키스탄에서의 높은 대우 이미지 때문”이라고 이 부장은 설명했다. 펀자브의 대평원에 놓인 고속도로변의 안내표지판 곳곳에는 아직도 대우의 로고가 부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공사를 마치고도 대금을 다 받지 못했고 아직도 받아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라호르를 떠난 지 3시간이 더 지나 멈춘 칼라 카하르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대우의 간판이 크게 걸려 있었다. 초현대식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 ‘세계경영’을 모토로 내세우고 파키스탄에서 벌였던 비즈니스 현장을 보니 그의 실패가 더욱 안타까웠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과거 김 회장의 경영방식을 두고 “사상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거나 아니면 실패할 것”이라고 평가했던 기사가 떠올랐다.
폭동 당시 삼미의 한국인 트리오는 페샤와르에서 급보를 보고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갈 수가 없었다. 페샤와르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상황도 매우 위태로웠다. 운행 중인 다른 도시도 위태로웠다. 심지어는 라호르에서도 시위대가 외국기업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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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문을 연 KFC 페샤와르 매장. |
버스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급선무. 이 사장은 파키스탄 당국에 요구, 사태가 급박해질 조짐이 보이면 바로 버스를 안전한 군부대 내부로 옮겼다. 그리고 상황이 느슨해지면 곧바로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버스 16대가 불에 탔는데도 정상적인 노선 운행을 하기 위해 대기버스 전량을 투입하고 24시간 운영을 하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이 사장은 “그건 전쟁이었다”고 했다.
이 사장은 페샤와르에는 파키스탄 직원을 보내 현지 복구를 지원토록 했다. 본부에서 버스와 정비용 부품을 보냈다. 삼미대우에 페샤와르는 4번째로 큰 사업 거점이다. 이곳에서 라호르 등 모두 6곳의 버스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페샤와르 터미널 책임자 아잡 굴(32)씨는 “사흘간 자지 않았다. 페샤와르의 직원 200명이 대부분 그랬다”고 말했다. 청소는 신분이 낮은 청소부의 일이란 인식이 강한 파키스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구분이 없었다. 모두가 빗자루를 들고 현장 정리에 나섰다.
사고 일지를 보면 이들이 얼마나 미친 듯이 일했는지 나타난다. ‘사고 다음날, 불에 탄 버스를 크레인을 동원해 터미널 한쪽으로 정리. 새벽 2시까지 일함. 2일째, 노선 일부 운행 재개. 다른 지역에서 오는 버스 도착. 3일째 운행 준비 완료. 사태 재발 우려한 당국이 운행 불허. 5일째 운행 정상화.’
“당연한 복구 일정이 아니냐”고 할 수 도 있으나 파키스탄은 한국의 속도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다. 같은 날 공격을 받았고 그것도 건물 외부만 일부 불탄 KFC의 점포는 20일이 지나서야 영업을 재개했다.
이 사장이 1주일 뒤 페샤와르에 갔을 때 터미널은 울음바다가 됐다. 직원들이 울음을 터뜨렸고